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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고한 고독 속으로

이별, 그리고 커피 한 잔.














어김없이 늦은 나를 반기는 그와
왠지 모를 어색한, 그리고 불길한 기운이 감돌던 그 날.


시시껄렁한 일상의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흥미로운 '척' 귀를 기울이기도, 또 전하기도 하였다.
속으론 연신 '아... 피곤해. 집에 가서 자고싶다.' 외치던 중.


갑자기 모든 이야기 소리들은 끊어지고 적막이 흐른지 십여 분.
심심해 보이던 그의 입이 갑작스레 이별을 이야기 한다.


나를 향한 원망스런 눈은 어느새 촉촉해져 있었고.
나는 내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고 변명을 하고 있더라.
아니, 거짓말을...


항상 준비는 하고 있었지만,
그의 눈도 마주하지 못하고 거짓말을 뱉어버린 후,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거리를 지나다가 쇼윈도 안으로 흔히 보게 되는 지루한 마네킹처럼.
나도 그렇게 가만히 침묵할 수 밖에 없었다.
아무리 집중하려 해도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눈꺼풀도 깜빡일 수 없었고, 속 시원히 숨을 쉴 수도 없었다.
손가락 하나조차도 내 맘대로 움직여 지지 않았다.
마치, 내 사랑도 지루한 마네킹이 되어버린 것만 같은 생각이 스쳤다.

흔히 드라마에서 연인 중 한 사람은 이별을 고하고,
남은 한 사람이 '시간이 멈춘 것 같아.' 하던 말을.
이별을 향한 그 정도의 표현을.
나는 스물하고도 다섯이 되어서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별 당했다. 라고 표현하겠다.
그래. 나는 그 날, 그에게서 이별 당했다.
어떠한 발언권도 선택권도 잃어버린 채,
쏟아지는 원망을, 비난을 들어내어야만 했다.
아주 일방적이고,  시들한 가시같은 이야기들을.

분명, 가시이지만 날카롭지 않은. 찔려도 아프지 않은.



그렇게도 복잡한 내 속도 모르고. 그는 말한다.
'오늘은 아니길 바랬는데, 더이상 너를 참을 수가 없다. 사랑없는 너를.' 


그를 향한 나의 사랑이 없었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해 온 자신이 원망스럽다 하였다.
그러고보니, 건너편으로 보이는 창에 비친 나는.
너무도 담담해 보였다. 이별 '당한' 사람 같아 보이지 않았다.


나보다 오히려 더 힘들어 보이는 그가 끝내 자리를 뜨고.
나는 커피 한 잔을 더 시켰다.
유난히 뜨거운 김이 피어오르는 커피잔에 손도 얹지 않고
한 참을 생각에 빠져있었다.


그와 함께 한 수 년간. 우리가 쌓아올린 탑을 무너뜨린 건 과연 무엇인지.
깊은 과거로 돌아간다.
회상에 빠져 뒤늦은 후회가 밀려온다.
예상치 못한 일이라 당황스럽기까지 하였다.
딸꾹질도 나오려하고, 그게 아니라 오바이트를 하고 싶은 것 같기도 하고.

짐작할 수 없을 만큼의 버거운 시간이 흘렀다.
앞 테이블의 무리가 어느새 바뀌어있고, 그제서야 나는 잔을 든다.


잔에 손이 닿았고, 차갑게 식어있는 커피잔에
억지로, 힘들게 눌러둔 설움이 복받쳐오른다.

한 모금, 두 모금. 마지막, 또 한 모금을 마시니.
눈물이 한 방울, 두 방울. 툭툭 떨어진다.
차갑게 식은 커피가 너무 쓰더라.
입 안 가득 퍼진 쓴 커피 맛은. 좋지 않았다...



커피인지, 차갑게 식은 마음인지. 참을 수 없이 쓰더라.
가슴 가득 퍼져버리는 씁쓸함도 견디기에 버겁더라...

그리고, 나란 사람.
금새 아무렇지 않은 듯. 눈 밑을 닦고, 자리를 떴다.




그리고. 그 곳에 나는 아무것도 버리고 오지 않았다.